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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와 소인의 행실과 예법

by 서피치님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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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나아가는 군자의 모습과 멸망 에로 내리닫는 소인의 행실

사람으로서 남의 선행을 보았을 때는 얼른 마음을 바로잡고 내 몸에도 그러한 선행이 있는가를 돌이켜 보고,

또 남의 불선을 보았을 때는 두려운 마음으로 내몸에도 혹 그러한 나쁜 점이 있지나 않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내몸에 선행이 있거든 이것을 단단히 잡고 스스로 즐겨하며 잃지 않도록 할 것이요, 불행히도

내 몸에 불선이 있을 때는 무슨 재변 인양 반드시 이것을 미워하여 곧 떨어 버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로 지향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기를, 자기의 그릇된 점을 들어 고칠 것을 깨우쳐주는 사람은

모두가 나의 스승이요, 자기의 옳은 점을 들어 더욱 힘쓸 것을 당부해 오는 사람은 모두가 나의 벗이며,

반대로 내게 알랑거리며 아첨해 오는 사람은 모두가 나를 해치는 적으로 여긴다. 그래서 군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벗을 친애하는 한편 내게 해가 되는 사람을 더 없이 미워한다. 언제까지고 선을 애호하여 잘못을

일깨워주는 바른 말을 달게 받아 스스로를 경계하며 나아가니, 설령 향상이 있기를 바라지 않은들 어떻게

향상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소인은 이와 반대다. 더없이 난폭하면서도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을 아주

미워하고,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며, 호랑이와 이리와도

같은 잔인한 마음바탕에 행실은 금수 그대로인데도 남이 저를 두고 사람을 해치는 적으로 여기는 것을

원수처럼 생각한다. 그뿐인가, 자기에게 알랑거리며 아첨하는 사람은 가까이하고 바른 말로 잘못을 깨우쳐주는

고마운 사람은 도리어 멀리하며, 몸을 닦아 행실이 바른 사람을 두고 비웃고, 충실한 사람을 보면 적인양하니,

이러고서 아무리 멸망하지 않기를 바란들 무슨 수로 멸망하지 않고 견디랴! 시경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야

말로 해독만을 끼치는 소인의 행실을 여실히 들어낸다.

예법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어디를 가나 어디서나 항상 선을 지킬 수 있는 척도가 있다. 이러한 척도로 써 자기의 심기를

다스리고 생명을 기른다면 자그마치 오 백세를 살았다는 요임금의 신하 팽조보다도 더 오래 살 수 있으며,

또 이것으로 몸을 닦아 이름을 날린다면 그 이름은 성왕으로 이름 높은 옛 요임금과 우임금과도 아울러

일컬어질 수 있다. 참으로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다행히 통달하여 부귀에 처했을 경우에도 좋고, 또 불행히

곤경에 처했을 때 빈천에 대처해 나가기에도 편리한 것,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예법]인 것이다. 대체로,

사람의 혈기와 지의 및 지려 등을 움직여 나가는 데 있어, 예법에 의거하면 두루 잘 다스려져 막히는 일이

없으나, 예법에 의거하지 아니하면 도리에 어그러져 한껏 느즈러지고 만다. 음식과 의복, 거처와 동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예법에 의거하면 모두가 조화를 얻어 적절하게 잘 되어 나가나, 그렇지 아니하면

제각기 조화를 잃어 결국에는 병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용모와 태도며 진퇴,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도

예에 의거하면 고상한 품위를 지니게 되나, 예에 따르지 않을 때는 아주 거만스럽고 편파적이어서 일반

대중과 같이 저속한 데로 떨어지고 만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예가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예가

없이는 만사에 성공을 가져올 수 없으며, 국가도 예가 없으면 판한 할 수 없다. 시경에도 이런 말이 있다.

[예의도 바를 시고 법도에 다 맞거니 웃음과 말조차 모두가 제격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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