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오직 자기 몸을 훌륭하게 닦는 것이어야 한다
군자가 학문하는 것을 보면 이러하다. 군자는 옛 성현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면 이것을 곧 마음에 새겨
온몸에 흠뻑 펴서는 드디어 행동 하나하나에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의 언어와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 하나하나가 다 모든 사람의 법칙이 된다. 그러나 소인은 이와 다르다. 소인이 학문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 만다. 학문이래야 입과 귀
사이에서만 오가는 것, 그 거리가 겨우 네치 정도이니, 오척이나 되는 몸뚱이를 무슨 수로 아름답게 꾸밀 수가
있겠는가! 옛날 학자들은 오직 자기의 도를 위하여 학문에 힘 썼으나, 지금의 학자들은 반대로 자신을 다만
남에게 알리기 위하여 학문을 한다. 군자의 학문은 그것으로 그몸을 훌륭하게 만들지만, 소인의 학문은 그 목적이
남을 위한 것이라, 결국 그것은 자신을 금수로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소인은 묻지 않는 일을 남에게 말하기를
좋아하니, 이런 것을 두고 경망스럽다고 하며, 또 혹 그에게 누가 한가지 일을 물으면 두가지 세가지 일을 말하니
이런 것을 말 많다고 한다. 경망스러운 것도, 말 많은 것도 다 좋은 것이 못된다. 학문이 높은 군자가 질문을
받았을 때 나오는 대답은 마치 메아리와도 같아 알아듣도록 대답하되 그 물음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
학문을 하는데는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 뫼시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학문을 하는데는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어진 스승을 택하여 그분을 가까이 뫼셔 지도를 받는 것 보다
더 편리한 방법은 없다. 이미 말한 바 있는 예와 악은 준척의 대강을 가리키는 것이기는 하지마는 상세한 설명이
없어 알기가 어렵고, 시와 서는 고대의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한 것이기는 하나 현실에 아주 적절한 것은 못되며,
춘추는 내용이 간결하고도 정확성이 있기는 하나 역시 그리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 뫼셔 그분의 언어와 행동을 모방하고 또 군자의 말씀을 깊이 새겨 몸소 실천한다면
마침내는 그 사람의 덕망은 점점 높아져 아름다운 이름을 온 세상에 널리 떨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말하기를,
학문을 하는데는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 뫼시는 것 보다 더 편리한 방법은 없다고 한 것이다. 또한 학문을 하는데는
훌륭한 스승을 즐겨 따르는 것보다 더 빠른 길은 없으니, 예를 숭상하는 일은 그 다음에 할 일이다. 만일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 할 수도 없거니와 예조차 숭상하지 아니하면서, 다만 이것저것 잡다한 학성을 줏어 베우며, 변천하는 현실과는
상관도 없이 그저 시와 서의 글귀만을 외우며 신봉할 뿐이라면, 그 사람은 일생을 두고 학문을 한다 하더라도 고루한
학자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요, 순, 우등 옛 성왕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인의를 근본으로 하여 실천해
나가려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걸어가야 할 정한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다. 예야 말로 사방에 통할 수 있는 인생의
대도인 것이다. 예란 비유하자면 갓옷 깃고대를 쥐고 치켜드는 때와 같은 것으로, 이것을 움켜쥐고 드리우면 그 깃고대에
딸려 갓옷의 어느 한 부분도, 또 털 한 오라기라도 거꾸로 스는 일이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예법에 의거하지 아니하고
다만 시와 서에만 의지한다면, 이것은 마치 손가락으로 황하를 측량하고, 뾰죽한 창으로 방아를 찧으며, 또 송곳으로
병 속에든 음식을 집어먹으려는 것과 같아 아무래도 목적을 이룰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여 예를 높여 실천해 나간다면
비록 경전에는 어두우나 법을 아는 선비라 할 것이요, 반대로 예를 지키지 않는다면 설령 경전에는 얻은 지식과
말재주는 있다 하더라도 결국 쓸모없는 학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댓글